이제 크리스천이 홀로 걷고 있을 때, 저 멀리 들판을 가로질러 그를 향해 다가오는 어떤 사람을 발견했다.
그리고 마침 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.
이 사람의 이름은 미스터 세상현자(Mr.
Worldly-Wiseman)이었고,
그는 인간적 전략(Carnal-Policy, 육신적 정책)라는 마을에 사는 사람으로,
그 마을은 크리스천이 살던 멸망의 도시에서 멀지 않은 큰 도시였다.
이 사람이 크리스천과 마주하자, 마치 그의 도착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굴었다.
왜냐하면 멸망의 도시에서 떠난 순례자들은 대개 소문이 퍼져 먼 도시들까지 회자되었기 때문이었다.
그리하여 세상현자은 크리스천이 한숨 쉬며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오는 모습을 보고, 동정하는 태도로 대화를 걸었다.
세상현자:
“이보시오, 좋은 분. 어쩌다 이리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게 길을 가고 계시오?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?”
크리스천:
“그렇습니다, 말씀대로 짐이 너무 무거워 허덕이고 있습니다.
그 어떤 불쌍한 사람보다도 힘겨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.
제가 어디로 가는지 말씀드리자면, 바로 저 앞에 있는 작은 문(Wicket-gate)을 향해 가는 중입니다.
제가 들은 바에 따르면, 그곳을 통과하면 이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는 길에 들어설 수 있다고 합니다.”
세상현자:
“자네, 아내와 자녀들은 있소?”
크리스천:
“예, 있지만 이 짐이 너무 무거워서, 예전처럼 가족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.
사실 지금은 가족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.”
세상현자:
“그렇다면 내가 좋은 조언을 해도 듣겠소?”
크리스천:
“예, 좋은 조언이라면 꼭 듣고 싶습니다.
저는 지금 현명한 조언이 정말 절실합니다.”
세상현자:
“그렇다면 내가 드릴 조언은 단 하나요.
하루빨리 그 짐부터 벗어버리시오.
그 짐을 벗기 전에는 평안도 없고, 하나님이 자네에게 허락하신 복도 누릴 수 없을 것이오.”
크리스천:
“말씀하신 것이 바로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.
하지만 저는 제 힘으로는 짐을 벗을 수 없고, 우리 나라에서 이 짐을 벗겨줄 사람을 아는 이도 없습니다.
그래서 제가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며, 말씀드렸듯이 작은 문으로 가는 중입니다.”
세상현자:
“도대체 누가 자네에게 이 길을 가라고 했소? 이렇게 험한 길을 가면서 짐을 벗겠다고?”
크리스천:
“제가 기억하기로는 이름이 복음전도자(Evangelist)였던 분입니다.
그분은 매우 위엄 있고 존경스러운 분이었습니다.”
세상현자:
“그런 조언을 했다니, 나는 그 사람을 정말 책망하고 싶소!
이 세상 그 어떤 길보다 더 위험하고 골치 아픈 길이 바로 그분이 자네를 이끄신 그 길이오.
자네도 벌써 그 위험을 겪은 듯하구려.
자네 몸에 묻은 진흙을 보니 절망의 늪(Slough
of Despond)에서 빠져나온 것이 틀림없구려.”
“하지만 그 늪은 시작일 뿐이오.
그 길을 따라가면, 피곤함, 고통, 굶주림, 위험, 헐벗음, 칼, 사자, 용, 어둠,
결국에는 죽음까지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.
이 모든 것은 수많은 순례자들의 증언으로 확인된 사실이오.”
“그러니 왜 그런 위험한 조언을 듣고 자발적으로 자기를 위험에 빠뜨리려 하오?”
크리스천:
“하지만 선생님, 제가 등에 지고 있는 이 짐이야말로
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모든 위험보다도 제게는 훨씬 더 끔찍합니다.
사실 저는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이 짐에서 해방될 수만 있다면, 다른 건 개의치 않겠습니다.”
세상현자:
“그 짐은 애초에 자네가 어떻게 얻게 된 거요?”
크리스천:
“이 손에 들고 있는 책을 읽다가 얻게 되었습니다.”
세상현자:
“역시 그렇군.
자네도 다른 어리석은 이들과 마찬가지로, 너무 높고 깊은 문제에 손대다가 지금의 혼란에 빠진 것이오.
이런 혼란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 뿐 아니라, 절망적인 행동으로 몰고 가기도 하지.
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좇게 되는 법이오.”
크리스천:
“하지만 전 제가 원하는 것이 확실히 있습니다.
그건 바로 이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.”
세상현자:
“그렇다면 왜 이렇게 위험한 길로 가려 하오?
내 말을 차분히 듣기만 한다면, 훨씬 더 안전하게, 자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소.
더구나 내가 말하는 방법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소.
게다가 자네가 지금 가는 길처럼 위험한 것도 아니오.
오히려 그곳에서는 안전과 우정과 만족을 누릴 수 있지.”
크리스천:
“제발 그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.”
세상현자:
“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‘도덕 마을(Morality)’이 있습니다.
거기에는 ‘율법씨(Mr. Legality)’라는 훌륭한 신사가 살고 있지요.
그는 판단력이 뛰어나고, 명망 높은 분이며, 자네 같은 사람들의 짐을 벗겨주는 데 아주 능한 분이오.
내가 아는 순례자들 중에도 그의 도움을 받아 짐을 벗은 이들이 많았지.
게다가 그는 불안과 염려를 다스리는 치료법에도 능통하오.
혹시 그가 집에 없더라도, 그의 아들 ‘예의바름씨(Civility)’가 같은 도움을 줄 수 있소.”
“거기 가면 짐을 벗을 수 있고, 원한다면 자네 가족을 불러 그 마을에서 함께 살 수도 있소.
그 마을에는 빈 집들도 있고, 생활비도 저렴하며 품질 좋은 음식도 구할 수 있소.
또한 그곳 주민들은 모두 정직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오.”
이 말을 들은 크리스천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.
그러나 곧, 이 정중한 신사의 말이 사실이라면, 그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.
그래서 크리스천은 다시 세상현자에게 물었다.
크리스천:
“선생님, 그 훌륭한 분의 집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?”
세상현자:
“저기 보이는 높은 언덕이 보이시오?”
크리스천:
“예, 아주 뚜렷이 보입니다.”
세상현자:
“그 언덕 너머로 가면, 제일 먼저 보이는 집이 ‘율법씨’의 집일 것이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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